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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소풍 끝내신 아버지

지난 주말 아침부터 작은 올케한테 카톡이 왔다.  작은 동생과는 매주 월요일마다 엄마네 집에서  카톡으로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는데 작은 올케한테 온 문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아주 짧은 문장 하나였다.  지금 요양원으로 절차 밟으 러 간다며 아시고 계셔야할 것 같아 문자를 넣었다고 한다.  올해로 90 아쉽지는 않은 나이시다.  오년 전까진 집에서 운동도 하시다가 한번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부러지고 나선 요양원은 들락날락하시다 아예 삼년전부터는 요양원에만 죽 게시다가 돌아가셨다.  단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막판엔 코로나로 자식 얼굴을 그저 유리창 너머로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주만해도 당신이 백살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농담을 작은 동생에게 하셨다는데 너무 급작스러운 통보다.  주무시다 가셨으니 그것도 당신의 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준비하던 중 육이오가 났고 결국 흥남부두에서 미국 군함을 타고 내려와 거제수용소에 계시다가 국군에 자원입대하셔서 전쟁끝에 참가하셔서 군생활을 오래 하시다 퇴직하고 택시사업과 자동차 부품 사업으로 안정적 삶을 사시는 것도 십년 남짓 고향 선배의 권유로 더 큰 사업을 모색하다가 집까지 차압딱지가 붙고 엄청난 고생을 하셨으며 그 후론 군대동기가 하는 주유소를 맡아 경영을 죽 이십년 넘게 하시고 은퇴하셨다.

 

늘 남을 도우시며 사셨고 자식들에겐 자상한 아버지 아내에겐 세상 다시 없는 현대판 남편이었고  몸 약한 엄마를 수시로 친정에 보내서 휴양하게 하고 삼남매 밥도 해주시고 빨래도 해주셨을만큼 그 시대에는 아주 희귀한 분이셨던게 일찍 어머니를 여의시고 서모밑에서 눈치밥을 드셨기에 철이 일찍 들었다고 그래서 아이들의 엄만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한다며 늘 엄마를 최우선시 하시던 분이셨다.

 

당신의 이생에서의 소풍이 참 좋았노라고 늘 말씀하셨던 아버지, 효자인 막내아들 보살핌 속에 소풍 잘 끝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추신)

안타깝게도 저는 참석을 못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비행기표만 사면 갔던 곳을 이젠 비자를 받아야 하며 그것도 범죄증명서까지 첨부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 아무리 빨라도 삼주일 이상이 걸리는지라 아예 갈 엄두도 내지 못해서 그것이 조금 화가 나긴 합니다.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도 이런 형평성 없는 일은 얼른 해결되야 하는데 캐나다 교민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도 하고 했지만 언제나 풀릴지 모르겠네요